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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02-07 17:12
10년의 기다림..그리고 2010년도 원광대 한의대 편입시험 합격
 글쓴이 : 거북머리 (125.♡.210.12)
조회 : 17,981   추천 : 8   비추천 : 0  
제가 처음 한의학에 관심을 가진건 20대 초반에 EBS에서 방영했던 김홍경 선생님의 한의학 강의를 본 이후부터였습니다. 그 강의를 보고 난 후 약간 어이없게도 제 평생의 가야 할 길은 무조건 한의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당시 전 서울 모대학의 법대를 다니고 있었고 집안에 한의학과 관련해서 종사하시는 분은 한 분도 안계셨습니다. 뭐랄까요...다만 그냥 한의학이 곧 제 자신이라는 느낌이라고밖에 설명을 못하겠습니다.
 
그 이후 한의대를 들어갈 생각을 해보았지만, 아시다시피 2000년대 초반은 한의대 점수가 거의 하늘끝까지 치솟을 때였기 때문에 제 실력으로는 아무리 해도 그 점수까지는 도달하기 힘들 듯 했습니다. 특히 이과 수학은 거의 엄두를 낼 수가 없었죠. 그래서 편입을 알아봤더니 수능보다 더 어렵더군요. 그래서 마지막으로 미국 한의사를 알아봤습니다. 비록 한국에서 합법적으로 진료를 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미국에서는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고민이 많았습니다. 가족까지 다 내팽개친 채 평생 타국에서 한의학을 할 만큼 내가 한의학을 사랑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 말입니다. 결론은 Yes였습니다. 그래서 미국한의사 취득 절차를 대행하는 한국 업체를 알아보고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집에서는 엄청나게 반대했죠. 그렇지만 한의학을 빼고는 제 자신은 존재 자체가 무의미했기 때문에 저도 어쩔수가 없었죠.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결국 부모님께서 허락해주시고 이제 비행기표만 끊으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끝내 반대하시더군요. '미국 가려면 나를 밟고 가라'는 최후의 선전포고와 함께.. 결국 제가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졸업 후 유명 해운회사에 취직했죠. 하지만, 완전한 포기는 아니었습니다. 해외출장갈 때면 캐리어 가방 안에 한의학 관련 책은 항상 넣어다녔습니다. 혹시 인생에서 다시 올지 모를 '기회'를 위해서였죠.
 
그렇게 2년간 회사생활을 하고 어찌하다가 정말 의도하지 않게 우연히 맞선을 봤습니다. 첫만남의 자리에서 전 제 자신이 한의학 때문에 회사생활을 안정적으로 할 자신이 없고 언젠가는 한의학의 길로 들어설 사람이라고 미리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이런게 운명인건지..거짓말처럼 그 여인은 맞선상대로서의 이런 황당한 미래계획을 듣고서도 전혀 불쾌해하지 않고 오히려 저의 꿈을 같이 꼭 이뤄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뜻이 맞아 단기간에 결혼까지 골인했죠. 바로 너무나 사랑하는 지금의 제 아내입니다.^^
 
그리고 결혼 후 1달만에 아내가 임신을 했고 다시 2달 후에 전 회사에 사표를 냈습니다. 한의대 편입으로 길을 결정한 겁니다. 회사를 그만두는 것에 관해 아내는 전혀 반대하지 않고 응원을 해주었지만 부모님은 매우 충격을 받으셨습니다. 결혼까지 하고 아내가 임신도 했는데 설마 이런 무모한 행동까지 하지는 않으리란 예상을 하셨겠죠. 처가쪽에서는 차마 저에게 서운한 말씀까지는 안하셨지만 속으로 얼마나 답답하셨겠습니까. 하지만 그만큼 저의 결심과 목표도 너무도 단호했습니다.
 
그때부터(2008년 3월) 저의 수험생활은 시작됐습니다. 목표는 원광대 한의학과로 잡았습니다. 다른 한의대는 한문과 한의학개론 시험만 보지만 원광대는 과학의 비중이 컸습니다.고백하건대, 전 화학과 물리는 중학교때부터 포기했습니다. 과학 자체가 저에겐 너무 어려웠죠. 그래서 수능 볼 때도 화학과 물리는 문제도 안보고 3번으로 다 찍고 나머지 문제에 열중했습니다. 보통 공부 좀 하는 학생들은 전과목을 어느정도 기본적으로 잘하기 마련인데 제가 좀 특이한 학생이었죠. 어쨌든, 전 자연과학을 잘 모르는 한의사가 되기는 정말 싫었습니다. 평생 한의사로서 한의학을 연구하는 사람이 기본적인 생물과 화학도 모른다는 것은 저에겐 용납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목표는 이랬지만, H가 수소인지, C가 탄소인지도 모르는 거의 초등학생 수준의 실력을 가지고 대학 2,3학년 수준의 생물, 화학문제를 푼다는건 거의 어불성설에 가까웠습니다.
 
마음을 정말 독하게 먹고 주기율표의 원소기호부터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화학 계산문제에는 log나 ln같은 것도 나오는데 그게 뭔지 몰라 고등학교 수학책 찾아보면서 공부했습니다. 학원수강을 착실히 했지만 1년차 수험생활 때는 강의내용의 20%도 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정말 하루하루가 절망의 연속이었습니다. 무조건 또 보고 물어보고 반복하고 외웠습니다. 외우다보면 길이 보이겠지..하면서요.^^; 같이 학원다니는 수강생들은 저보고 '이제는 좀 이해할 때가 되지 않았냐'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어쨌든 1년차 공부때는 새벽 6시에 일어나서 공부 시작해서 밤 12시정도까지 순수하게 하루평균 16시간정도 공부했습니다. 주위에서 보면 정말 미친 사람처럼 공부했죠.
 
1년을 그렇게 공부하자 드디어 화학은 고등학교 수준에 이르렀고 생물도 기본은 잡힌 듯 하였습니다. 한문은 원래 제가 좋아해서 크게 어려움은 없었던 듯 합니다. 비록 한문은 공부할 양은 엄청나게 많지만 이상하게 잘 안 까먹었습니다.
 
2년차 때에는 드디어 체력의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온몸이 거의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정말 이를 악물고 공부했습니다. 병원과 한의원을 몇군데씩 다녀가며 하루에 순수하게 13시간 정도는 공부한거 같습니다. 특히, 2년차때에는 아내의 육아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저와 아내, 그리고 갓 태어난 아들을 데리고 처가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저에겐 한의학으로 성공하는 것만 중요할 뿐, 저의 자존심같은건 백번이라도 버릴 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처가집으로 옮기고 나서는 근처 시립도서관에서 공부했는데 같이 도서관 다니는 아는 동생이 '형처럼 공부하는 사람은 태어나서 한번도 본 적이 없다'면서 한의대 편입시험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안붙으면 말이 안된다고 용기를 북돋아주었습니다. 공부하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열심히 했습니다.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공부했죠. 5분마다 시계초침보면서 한 글자라도 더 보기 위해 안달했으니까요. 그렇게 하면 오후 8시 정도 되면 입술이 파래지면서 몸을 움직일 기운조차 없게 됩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정성스레 쌓아 2010년도 원광대 한의대 편입시험을 치뤘습니다. 실력은 이미 거의 편입시험응시자 중에서는 국내 최고라고 자부할 정도로 올려놓았습니다. 시험을 무사히 치뤘지만 한문 과목이 지나치게 어렵게 출제되어 느낌상 합격을 장담할 수 없었습니다.
 
합격자 발표일까지의 일주일이 정말 피가 말랐고 합격자 발표를 인터넷에서 확인하는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합격자 확인버튼을 누르기 직전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말한 후 마우스를 클릭했습니다.
 
합격이라는 글자가 크게 떴고 그 순간 우리 두 사람은 부둥켜안고 아무말없이 크게 흐느껴 울었습니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수도꼭지처럼 흐르는 눈물...그게 어떤 느낌인지 생전 처음 알았습니다. 너무도 고생한 아내, 너무도 죄송했던 장인어른과 장모님, 그리고 부모님, 그리고 정말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던 수험생활, 이 모든게 어지러이 머리속에서 엉키면서 10분 정도를 울었던거 같습니다.
 
정말 세상에 공짜는 없는 거 같습니다. 편하게 돌아가려고 미국한의사도 생각해봤지만 편하게 가려고 할수록 길은 더 멀어진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한의학이라는 망망대해에 첫 발을 어디서부터 담궈야할지, 어떻게 실력을 키울지 모든것이 아직은 암담하지만 웬지 잘해낼 자신이 생깁니다. 어디서부터 나오는 자신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 확실히 느낄 수 있는건 인생 제 2막의 커튼이 막 올라가려는 지금, 무언가 새로운 도전거리가 앞에 무궁무진하게 널려있고 그 앞에 또한번 열정적으로 부딪혀 나가는 제 자신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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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edrich 10-02-07 17:44
 121.♡.197.2  
전에도 채팅방에서 보았지만 다시한번 축하드립니다!
갈매기꿈 10-02-07 18:02
 119.♡.180.98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아무게게 10-02-07 18:09
 121.♡.35.206  
진심으로 축하드려요..추천 쌔웁니다 ㅎㅎ
보통사람 10-02-07 18:12
 125.♡.53.178  
완전 드라마네요
바라보기 10-02-07 19:54
 119.♡.176.11  
정말 축하드립니다. 훌륭한 한의사 되실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저도 먼길을 돌아 이길에 들어서게 되었죠. 학교에서 만나게 되면 인사나 하고 지냅시다.(저도 원대다닙니다)
임시닉뇌임 10-02-07 19:59
 112.♡.153.80  
결혼한거랑 최종결과만 빼고 중간과정은 저랑 거의 같네요

복받으셧네요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착한마눌님한테 평생을 충성하셔야겠네요...그런 여자분 이세상에 또 없죠..세상에 단 하나 있는 착한여자를 만나셧네요...

그렇게 먼길을 돌아돌아 결국 다 작살난 사람도 많으니까 그분들 몫까지 열심히 과정마치시길 바랍니다
브르쓰리 10-02-07 20:10
 121.♡.198.47  
축하드려요!정말 몰입해서 읽었네요 ^^ 좋은 한의사 되시길 바래요 ^^
담백 10-02-07 20:20
 118.♡.68.2  
정말 고생 많이 하셨네요.

그 열정에 감동받고 갑니다.축하드립니다.
무조건간다 10-02-07 20:37
 121.♡.186.243  
축하합니다. 그럼 저희와 같이 다니시는 건가요?

예2부터 청강형식으로 수업받으신다고 들어본 것 같아서요.
거북머리 10-02-07 23:54
 122.♡.187.153  
글 쓰다가 어디 갈 일이 생겨서 급하게 글을 마무리짓다보니 마지막 문장이 비문이 되었네요. 이해해주세요^^;
바다너머 10-02-08 00:01
 125.♡.249.28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는..

한의대 입학하는 건 별도로 치고서라도 거북머리님은 참 복 많은 분입니다.

평생 감사하면서 사세요~~
한방과학자 10-02-08 00:03
 121.♡.201.243  
감동이에요ㅠㅠㅠㅠ
버벌진트 10-02-08 00:21
 116.♡.70.27  
2010년에 들어오시는거면 몇학년부터 다니시는거죠?
하니사랑 10-02-08 00:28
 122.♡.216.87  
축하드립니다...

훌륭한 한의사 되시리라 믿습니다...^^
辛桃 10-02-08 09:25
 58.♡.111.57  
우와...정말 한편의 감동적인 인생드라마네요~

지금까지의 열정대로 앞으로도 열심히 하셔서 한의사로서도 꼭 성공하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열심히 10-02-08 16:14
 125.♡.0.4  
원광대는 예2편입입니다. 후배분이 되셨네요 추카추카
나는좋다 10-02-08 20:50
 119.♡.150.20  
선배님! ㅠㅠ
대단하세요 ...
저도 나름대로 고등학교 3년 공부 열심히 했다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선배님에게 비하면 부끄럽네요 ...
한의학에 대한 저의 열정을 더욱 뜨겁게 만들어주는 글이네요..
몰입해서 읽었습니다..ㅠㅠ
a고고씽a 10-02-08 23:54
 221.♡.195.119  
저도 글을 모두 읽었습니다. 저는 원광대는 아닙니다만
인연이 닿고 기회가 된다면 언제 한번 꼭 만나서 말씀 나누고 싶습니다.
훌륭한 한의사가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잠들자야지 10-03-08 16:22
 112.♡.140.40  
작년에 거북머리님 편입준비글이 기억이 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뒤늦게 지금 검색했는데
합격하셨군요! 정말 축하 드립니다!!! 더구나 합격수기에 감동까지!!!
Byeong 10-06-04 00:58
 220.♡.101.221  
와 정말 부럽고 축하드립니다..

전 고 2 평균수준 학생인데... 저역시 원광대 한의학과를 가려고 수능준비를 하고있습니다.

더 어려운시험을 2년동안 공부해서 끝내시다니 저에게도 용기를 주네요 감사합니다. (물론 공부량은 2년 그이상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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