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에 재학중이다가 다시 한의대에 입학해서 다니고 있는 한의대생입니다.

이제 내년이면 본과 2학년을 올라가는 저희 동기분들 중에는 저와 같은 상위권 대학을 재학 중 혹은 졸업 후에 다시 오신 분들이 아주 많습니다.

심지어 대기업에 취직하여 계시다 온 분들도 많은데요, 한의학의 전망이 그렇게 어둡다면 이 분들이 굳이 수고해서 한의대에 재입학 하시지 않았겠죠.

요즘들어 전망이 어둡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한의학과는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안된다 안된다 해도 일반 한의원 개원의들의 평균 수입과 직장인들의 평균 수입을 비교하면 많은 차이를 보입니다. 실제로 제대로 자리를 잡은 많은 한의사들이 월2천 이상의 수입을 내고 있고요. 일반과를 가면 석박사 과정을 밟지 않는 이상 전공을 살리기는 힘든 추세인데요, 그래서 상위권 대학 일반과 학생들도 항상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지 걱정하며 이것저것 건드려 봅니다. 그에 비하면 한의학과는 처음부터 자신의 갈 길이 정해져 있다는 점도 좋은 점이라고 보네요. 지금 주변 친구들을 보면 거의 졸업을 앞두고 있는 친구들이 많은데요, 여러분 연고대급의 공대를 간다고 절대 진로가 보장되지 않습니다. 상위권 공대, 자연대를 간 친구들의 70% 이상이 의전이나 약전 등을 고민한 적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남자의 경우에는 군대도 현역이 아닌 공중보건의(보건소 근무)로 졸업 후 갈 수 있기 때문에 큰 메리트를 지닙니다.

개원가가 어렵다고 하지만 그 것도 한의원 나름입니다. 어떤 한의원은 경영난으로 폐업의 위기에 있더라도 또 어떤 한의원은 억대 수입을 내고 있습니다. 이는 비단 한의사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치과, 양방의원 개원가의 사정도 마찬가지 입니다. 잘되는 곳은 떼돈을 벌고 안되는 곳은 빚만 늘어가겠지요. 변호사 사무사, 세무사 사무사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전문직이라고 철밥통을 차는 시대는 지났다고 봅니다. 개인의 경쟁력이 중요한 것이겠죠. 한의학 전체적으로도 그간에 보약 장사만으로 돈을 벌었던 과오를 반성하고 치료 영역을 확장하고 치료율을 높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으니 반드시 한의학은 이 상황을 극복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다만 한의학과와 의학과의 차이는 본인의 성향 차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본인이 확실한 이과 취향이다, 그럼 의대를 가시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그러나 본인이 문과적인 성향이 있다면 한의학과가 맞을 것입니다. 어떤 환자가 오든지 정확히 같은 병명이라면 정확히 같은 가이드라인을 충실히 따르면 되는 양방에 비해 한의학은 치료법이 다양합니다. 혹자는 이를 표준화되지 않았다하여 비판하지만 오히려 이는 한의학의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의학은 병을 치료하기 보다는 사람을 치료합니다. 같은 병이라도 사람에 따라 당연히 다른 치법을 구사하게 되는 것이죠. 또한 인체를 기계의 일부처럼 부분 부분 나눠서 보는 환원주의적 양방의 관점에 비해 전체성을 중시하고 인체 조직 간의 상호 조화를 중시하는 한방의 관점 역시 저에겐 매력적이라고 여겨집니다.

또한 삶의 질적인 측면에서 의대에 비해 한의대가 나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물론 한의대도 일반과에 비하면 학교생활이 매우 빡빡한 것은 사실입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제외하고도 수시로 수시고사에 쫓기는 생활을 하게되죠. 그러나 의대 친구들의 말을 들어보면 저는 편하게 살고 있는것 아닌가 싶어서 위안을 받기도 하고 조금 조바심이 나기도 했습니다. 많은 의대들이 쿼터제라는 학제를 도입해서 한 학기를 4쿼터로 끊어서 시험을 봅니다. 중간 기말 고사를 보듯 말이죠. 시험이 많아서 부담되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일단 방학이 짧아집니다. 보통 대학생의 방학은 두달 반정도가 되는데요, 의대는 한달이 채 되지 않는 학교도 있다고 하네요. 또 한의대에서는 전문의 과정을 필수적으로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에 또다시 인턴 레지 과정을 밟지 않는 사람들이 많고, 또 의대에서는 과선택에 따른 부담(예를 들면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 등을 전공하기 위한 학점 부담..) 때문에 정말 비인간적일 정도로 치열하게 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고 하네요.

저는 양방이 필요없다는 생각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현대 의학이 우리의 건강에 공헌한 바 절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방이 필요없다는 생각도 절대 하지 않습니다. 각자의 치료영역이 다른 것이죠. 만성적인 질환, 종합적인 질환에 대해 한의학은 강점을 보입니다. 한의원은 동네 의원급의 1차 의료기관이 맞습니다. 하지만 요즘에 하는 우스개소리로 4차 의료 기관이라는 말을 합니다. (3차 의료기관이 대학병원 이상의 종합병원급입니다.) 그정도의 병원에서도 못 고치는 질병이 돌고 돌아 한의원에서 잡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한의원에 내원한 환자들을 보면, 많은 환자들이 양방 병원에 가보았지만 별로 심각하게 여기지 않거나 혹은 별다른 해결책이 없다는 말을 듣고 한의원을 찾습니다. 또 좋은 치료효과를 보이고 있고요. 다만 안타까운 점은 사람들이 한의원을 너무 멀게만 느낀다는 것이죠. 대중들에 대한 지속적인 홍보도 한의학의 중요 과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때문에 본인의 성향에 맞는다면 충분히 한의학과의 전망은 우수하다고 봅니다. 근대과학 중심의 고등 과정을 이수한 학생들에게 한의학의 음양오행적 세계관은 다소 황당무계하게 들릴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역시 수많은 세계관 중 하나로 인정하고 공부하다보면 조금씩 그 타당성을 알게 됩니다. 또한 요즘의 한의학은 음양오행의 틀에만 갇혀 있지 않고 현대 과학을 접목해 나가고 있다는 점 역시 고무적입니다.

전 서울대를 버리고 한의대로 온 것 절대 후회하지 않습니다. 우수한 인재 여러분들이 한의학의 전망을 어둡게 보고 한의대 입학을 꺼려할까봐 노심초사하는 마음에서 이 글을 올립니다. 우둔하고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