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경희대 02학번 강오석이라고 합니다.
어제 후배와 이야기 하다가, 좀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의대 들어온지 1년도 채 되지 않아서 자퇴하거나 반수하는 분들이 몇명 된다는 이야기 였습니다.
처음 느낌은 당혹이었습니다. 저희때는 그런 일이 없었고, 아.. 세상이 그새 많이 바뀐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한의대 컷이 02/03때 만큼 되지 않는다는 것은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거야 사회 흐름을 타는 거고 올라갈 때도 있고, 내려갈 때도 있으니 제게 큰 의미가 되진 못합니다만, 그것과 별개로 한의학을 하겠다고 결정하고 한의대에 와서 그 후에 자퇴나 반수를 통해서 다른 길을 찾겠다는 결심을 하는 분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는 제게 놀라움을 주었습니다.
컷이 내려간다거나, 한의사 영업이 빌딩을 한채두채씩 올리던 예전만 못하다는 것은 분명 알고 진학했을텐데, 그러한 결정이 무엇때문에 바뀌게 된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게 이야기를 해준 친구는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의학이 도대체 뭔지 모르겠고, 음양 오행이니, 기니 하는 것들을 무조건 외우게 하고, 도저히 납득가지 않는 이야기, 손에 잡히지 않는 이야기를 강압하여 외우게 시키니, 당혹스러워 하는 친구들이 많다고 하였습니다.
그 친구는 한의사가 주변에 많은 환경에서 성장했음에도, 그 또한 한의대 교육에 충격과 당혹을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는 한의학 자체에 대한 문제가 아닐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잠깐 다른 쪽을 짚어서 넘어가겠습니다.
여러분, 1+1이 2가 되던 순간을 기억하십니까?
보통 아가들은 세살쯤에 그 과정을 거친다고 들었습니다. 아직 아이를 안키워봐서 잘 모르겠지만, 개인차가 심하고 부모님의 방식에 따라 다르겠지요. 한의대에 입학하시고, 또 입학을 원할정도의 인재들이시라면, 아마 바로 납득했을 수도 있고, 1~2주 걸렸을 수도, 아니면 1달쯤 걸리셨을 수도 있겠네요.
아가에게 1+1이 2가되고, 9 뒤에 10이 온다는 것을 처음 알려주는 순간은 참으로 놀라운 순간입니다. 본능의 세계에 있던 아이가 인류가 쌓아온 "합리의 역사"의 기초와 만나게 되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수에 재능이 있는 아이는 1+1을 배우면서 재미있어 할 수도 있겠지만, 관심이 없는 아이에게는 그 과정이 싫을 수도 있고, 답답하고 당혹스러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부모님이 아이의 이해와 학습에 대한 배려가 없으시다면 그 과정이 더 길고 짜증나는 과정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단계를 통해서 아이는 인류의 역사의 계승자가 될 첫 관문을 넘게 됩니다. 말이 거창하네요. 이 단계를 건너야 아이는 사람과 사람이 대화하고, 어울리는데 최소한의 기반이 되는 "합리"를 납득할 수 있게 됩니다.
음양이니 오행이니 하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현대사회에 있어서 고대 중국을 중심으로 기원하여 발달해온 "합리체계"는 비주류/비정통의 사고방식입니다. 비 과학적이며, 전 근대적이라는 오명 또한 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오명은 각 합리 간의 헤게모니 싸움의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이른바 과학적 방법론으로 대표되는 사고방식이 주류가 된 이상 그 오명은 이제 큰 의미가 없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창조의 기반이 되는 것이 비주류의 사고방식임을 생각해 볼 때, 이는 유의미하고 가치 있는 사고방식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러분이 받은 교육 체계에서는 이러한 사고방식과 논리의 틀을 전혀 접할 수 없습니다. 중국어를 한번도 배우지 않은 사람이 중국어를 낮설고 당혹스러워 하는 것이 당연하듯이, 처음만나는 음양과 오행은 궤변이자, 비과학적 말장난에 불과하다 느껴질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음양이니 오행이나 하는 사고방식은 현대 우리가 초등학교 때부터 배운 더하기(+), 빼기(-), 등호(=), 부등호(> or <) 같은 기본적인 것들일 뿐입니다. 사칙연산을 갓 시작한 초딩들이 사칙연산의 고루함과 지겨움에 진절머리쳐서 산수(요새는 수학이죠?)를 멀리하면, 그 아이는 수학의 미적분이나 삼각함수 같은 아름다움을 전혀 알지도 못한채 "수학은 이상하고 어려운 것"이라는 도장을 찍어버리고 말게 될 것입니다.
더하기 빼기를 배우고 등호와 부등호를 알아야 일차방정식이라도 좀 배울 토대가 되지 않겠습니까? 2차곡선 편미분 할때,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 등호 부등호에 대해서 의식을 합니까? 보통은 아니죠. 그냥 거기 있는 당연한 기호일 뿐, 그 의미에 대해 깊은 회의를 가지는 분들은 드물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수능이라는 수준의 공부를 하기까지 그 기초가 된 것은 바로 1 다음에 2가오고, 9+1이 10이 된다는 것을 이해하고 납득하는 그 과정이었습니다.
물론 그러한 첫 걸음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이 많은 상태에서 그 교육방법이 효율적이거나 친절하다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절약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 점은 안타깝고, 선배로서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의학이라는 신기하고 재미있고, 정말 쓸모있는 학문에 아직 접하지도 못한채 1+1 가르치는 방법이 이해가 안되고 짜증난다는 이유로 그 길을 접을 필요는 없습니다. 이는 첫 사랑에 실패했다고, 평생 솔로선언을 하는 극단적이고 조금은 유치한 생각일 뿐입니다.
한의학도 비록 현대화되지 못한 부분이 많아서 좀 고리타분한 냄새가 나서 그렇지 쓸만하고 재미있는 학문입니다.
각종 학설을 뒤져가며, 아 이 아저씨는 이렇게 말했는데, 저 아저씨는 저렇게 설명하는구나 하면서 비교 평가를 할 수 있고, 각 약물과 처방에 대한 인식의 심화와 활용의 역사를 되집으면서 자신이 어떤 처방에 어떤 가감을 해야할지 책과 논문을 뒤지며 공부하는 것은 여타의 학문을 공부하는 재미에 크게 뒤떨어진다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비록 현대화된 학문처럼, Index가 되어있지 않아서, 구글신에게 물어볼 수 없고, 아직도 디지털화 되지 않은 reference가 더 많아서 꼬질꼬질한 한문을 해석하며 책을 보아야 하지만, 이런 방법/수단적인 측면을 넘어서 공부할 대상으로서의 한의학은 충분히 매력적이고 가치있습니다.
더군다나 처음에 음양/오행을 배워도, 환자를 볼때 그게 전부가 아닌 것은 당연합니다. 환자의 수많은 증상과 그에 따른 인과를 외우고 적용하고 하는 측면에서는 딱히 양방이나 한방이나 서로 우열의 차이는 별로 없습니다. 단지 서로 쥐고 있는 약과 책이 다른 정도입니다. 설마 6년 내내 음양오행만 하고 있겠습니까?
수준높은 교육을 받다가, 당혹스러운 교육환경과, 소통이 잘되지 않는 교육방식에 적응이 어려운 점은 동감합니다. 그러한 상황은 졸업할 때까지 계속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단지 그러한 점이 미비하다고 해볼만한 한의학을 제낀다는 것은, 1+1을 이해하지 못하여 수학을 버리는 아가의 선택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불친절하고 배려없는 부모의 교육 지도 하에서 배움에 열의와 호기심을 가지는 아이로 자라나기는 몹시 어려운 일이겠지만, 여러분은 3살먹은 아가가 아니고 그 이상의 인내를 충분히 지불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계시고 있음을 나는 압니다.
한의대 와보니 한의사가 빌딩 못올리는 거 같아서 가시는 분들에게는 큰 아쉬움이 없습니다. 그러한 목표를 가지고 자신의 최선을 찾아가는 것이 그 분에게 적합한 일이될테니까요. 한의사가 또 그렇게 막장도 아니고, 한의사 선배들 보면 돈 많이 벌고 잘 사는 모습이 부럽습니다만, 그 이상의 돈을 원하는게 꼭 나쁜 일은 아닌것 같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첫 모습이 불합리해보이고, 어이없고 말이 통하지 않는 곳으로 보인다는 짧은 이유로 한의학이라는 재미있는 세계를 포기하지 마시기바랍니다. 그건 본인 손해일 거예요.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죠?
"나는 한의학의 방식이 고리타분하고, 교육방식도 어처구니 없어서 한의학을 버리는 거야"라는 이야기는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 후배 분에게 미안한 마음도 많고, 이 글을 읽으시는 후배 분께도 미안한 마음이 많습니다. 하지만, 어느 곳에 가던지 최소한의 인내는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의학은 그 인내를 지불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졸문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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