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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2-28 01:59
글쓴이 :
나랏말쌈 (61.♡.102.201)
 조회 : 7,409  추천 : 2  비추천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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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역시 학력고사 세대입니다.
학창시절 전 존재감이 없는 학생들중 하나였죠.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노는 쪽도 아닌.......
그렇게 물 흐르듯이 아무 의미없이 살아가다 군 제대 후에 다시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몇 번의 고생 끝에 들어간 대학을 어이 없는 이유로 때려 치우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로 몇 년 동안 또다시 자폐아로 살아갔습니다.
그렇게 나이를 먹어가면서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이렇게 살면 안된다는 생각에 고심에 빠졌습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학교를 마쳐야 할까?\'
어떤 공부를 해야할까 고심하다 한의학에 관심이 가게 되었습니다. 물론 다른 과는 나이 제한으로 나와도 별 소용없다는 현실이 크게 작용한거죠. ( 이 부분은 아직도 제가 부끄러워하는 부분입니다.)
02 시험을 얼마 앞두고 주변에 여러가지 우환이 닥쳤습니다. 주위에 친구가 별로 없는 탓에 기댈 곳도 없었습니다. 여친에게 기대고 싶어도 여친 역시 좋지 않은 상황이라 오히려 위로해주기 바빴습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공부하다보니 하루에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성적은 꽤 나온 편이었죠.
첨에 경희 한의를 생각하다가 막판에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한의학이 과연 내게 맞는 것일까, 나이를 생각해서 그 쪽에 가려는게 다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원서를 작성하면서 의대로 진로를 수정했습니다. 하지만 정보에 너무 무심했던 탓에 넣은 곳에 다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다 떨어지고 나서 한동안 가슴이 아팠습니다. 비록 늦게 시작했짐나 정말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실패하고 나니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더군요.
최종 결과가 발표되고 난 후 술을 먹고 쓰러졌습니다.
얼마 후 앤을 만났죠. 전 첨엔 그녀가 절 닥달할 줄 알았습니다. \'어떻게 공부했길래 그정도냐\'구.....
허나 그녀는 오히려 절 위로하며 이왕 늦은거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격려하더군요.
다시 몸을 추스렸습니다. \'그래 이제 정말 해 보자\'
하지만 아무도 모르게 공부를 하다보니 어려운 점이 많았습니다.
특히 금전적인 문제가 가장 절 괴롭히더군요. 참으로 막막했습니다. 그리고 슬프기도 했구요.
\'내가 얼마나 인생을 낭비하고 살았나...\' 하는 생각에.........
학기 초반에 돈을 모으고 8월에 들어서야 공부 할 시간을 만들어 냈습니다.
물론 일은 계속 했었구요.
언어는 오로지 기출 문제만 봤습니다.
문제보단 지문을 충실히 해석하려고 노력했죠. 다른 것도 하고 싶었는데 시간이 허락을 안하는 관계로...
수학은 지금도 뼈아픈 실책이지만 과외하러 가기 전에 눈으로 푼 것으로 만족해야했습니다.
사탐의 경우 국사는 그냥 교과서만 읽었습니다. 제가 전부터 국사는 좋아해서 국사 관련 책을 많이 읽어선지 교과서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윤리는 교과서를 토대로 노트에 따로 정리한 것을 계속 봤습니다.
일사는 필요한 부분만 외우고 나머지는 지문을 분석해서 답을 찾는 연습만 했습니다.
지리는 재작년에 한 내용이 기억에 남아 있어서 그냥 넘어갔구요.
과탐의 경우는 기본서 한권을 토대로 외울 내용만 외우고 나머지는 문제 속에서 답을 유추하는 능력을 키우는 연습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외국어는 도저히 할 시간이 없어서 그냥 시험치러 갔었죠.
역시 수능은 달랐습니다.
공부한 내용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해도 과언이 아니더군요.
눈으로 푼 수학은 결국 성적이 엄청 떨어졌습니다. 답안지 옮기다 틀리고 산수하다 틀리고 그렇게 나간게 거의 10점 가량이더군요.
외국어도 독해는 다 맞았는데 듣기에서 3개가 나가고 말았습니다.
과탐도 어이 없는 부분에서 나가긴 했지만 알아서 풀기보단 문제 속에서 답을 찾아낸 문제가 많아서 오히려 만족스러웠습니다. 사탐 역시 실수를 하긴 했지만 2개 정도 나가는 선에서 그쳤습니다.
언어는 110점은 충분히 넘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성적표엔 104점으로 나와서 당황스러웠습니다.
비록 성적이 크게 잘 나온 것은 아니지만 지나고 보니 제 공부 방식이 어느 정도는 유효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문제를 풀기보단 지문에서 답을 찾아내는 연습이 정말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언어도 문제집을 많이 푼 것보다는 주어진 지문을 충실히 해석하고 구조를 머릿속에 그려보았던 방식이 유효했던것 같구요.
아무튼 성적이 잘 나오진 않았지만 - 한의를 꿈꿨다면 또 실패했겠지만 - 그래도 갈 의대가 있어서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공부할 기간이 많이 남아있긴하지만 너무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레지던트를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별 의미를 두지 않기로 했습니다.
훌륭한 의학자가 되기보단 훌륭한 인격자가 되는게 제 앞으로의 소망입니다.
\' 三人行이면 必有我師라\'라는 문구를 가슴에 새기며 항상 배우는 자세로 살아가렵니다.
예전에 제 친구가 제가 한 말이 생각나는군요.
\'명문대에 너무 집착하지 마라, 부산에서 설갈때 티코로 가더라도 나중에 톨게이트에 도착할 때 벤츠로 갈아타면 그만 아니냐?\' 라는...
제가 한의대에 좋은 인상을 가진것 중에 하나가 학벌 논쟁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한의대를 가든 서로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정말 좋았죠. 하지만 의대는 아직도 그런 게 많이 남아 있다는 점이 맘에 걸렸지만 이젠 신경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전 의료인이 되고자 의대로 진학했지 설대 의대생이 되려고 의대를 진학한게 아니니까요...
비록 양의 지망생이긴하지만 그동안 여기서 얻었던 도움에 고마움을 느껴 떠나기 전에 한 번 제 경험을 말씀드렸습니다.
이번에 들어가시는 분들은 열심히 하셔서 선배들이 이룩한 것 이상을 이룩하시기 바라고 올 해 공부를 하시는 분들은 정말 후회가 남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하셔서 좋은 성과를 이루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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