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직업으로 바꾼, 전직 한의사를 만난 적이 있다.

한의원을 경영할 때보다 수입은 줄었어도 마음이 편하다는 말에

필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약 먹고 몸 어디가 불편하다며 전화로 항의하는 환자들 등살에

전화벨 소리만 울려도 심장이 두근거렸다는 그 분의 이야기는

바로 필자의 현실이기도 해서다.

한약 탓이 아닌 음식을 포함한 생활 부주의로 인한 것임을 말씀드려도

이미 신뢰를 잃은 상태에서는 필자의 지적이 변명으로 들리겠기에

환자의 태도가 막무가내일 경우 필자가 먼저 치료 중단을 선언한다.

이런 경우가 한의원마다 비일비재한데 환자나 한의사나 서로의 상처다.

한약에 불쾌감을 느낀 환자뿐만 아니라 항의를 들은 한의사도 마음이 무거운 바,

자신의 실력부족에 대한 자괴감... 한약에 문제가 없다는 억울함...

장사치 취급당하는 불쾌감... 경제적 손실에 따른 상실감... 등이 작용할게다.

이러한 마음 작용은 필자도 마찬가진데 여기에 더 큰 문제가 덧붙여진다.

앞으로 한의사를 계속할지 고민되게 만드는 문제가 따로 있는 것이다.

세상에 인과법칙(因果法則)만큼 무서운 법은 없다.

배부름의 과(果)를 얻으려면 음식값을 지불하는 인(因)을 맺어야 하고,

물건을 소유하는 결과를 가지려면 이 역시 물건값의 원인을 제공해야한다.

인과의 법칙에서는 공짜란 절대 없어서

비록 돈이 아니더라도 다른 형태로 그 값을 치르게 마련이니

공짜로 욕심을 취한 자는 그만큼, 아니 그이상의 불이익을 당한다.

필자가 돈을 두려워함은 이 때문인데

인과의 매개체로 활용되는 돈을 잘못 벌 경우 큰 피해가 생겨서다.

질병이라 환자의 업장(業障)을 대신 소멸해 주어야 하는

의료인의 입장에서 치료비의 인(因)을 환자와 맺고도

건강의 과(果)를 전해주지 못하면 돈을 통해 묻어 온 환자의 업장이

바로 의료인 자신의 업으로 쌓이는 것이다.

예컨대 치료율이 50%인 의료인에게

자기 수익의 반(半)은 재물이 아니라 환자의 아픔인 셈이다.

이렇게 쌓인 환자의 아픔은 곧 의료인 자신의 재앙으로 돌변하는 까닭에

그 화가 미치기 전에 환자의 업장이 묻은 돈을

자신의 주머니에 숨기지 말고 다시 꺼내야한다.

명의(明醫)라 해도 전체 환자의 치료율이 50%를 넘기지 못함을 볼 때

모든 의료인의 재산 중에 최소한 50% 이상은 진정한 자기 몫이 아닌데

특히 한의사는 그렇다.

한의사는 진단에 있어서 정확한 데이터와 수치가 아닌

개인의 감각에 의한 주관적인 견해가 들어가므로

마음먹기에 따라 환자에게 불필요한 한약을 강요할 수 있어서다.

따라서 한의사는 양의사보다 인과의 법칙을 더욱 두려워하여

언변(言辯)으로 축적한 재산은 바로 독(毒)임을 경계해야 한다.

오늘 칼럼은 필자의 자기반성이다.

한의사 전체를 욕보이고자 쓰는 글이 아니다.

의료인과 환자 사이의 상호작용은 장사치와 손님과의 관계와 달라서

돈의 흐름을 조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이전 칼럼에서 여러 번 강조했었다.

그럼에도 또 다시 필자가 이 문제로 주제 삼는 것은

필자 자신의 몸과 마음이 황폐해서다.

환자들 덕에 재산이 적지 않게 쌓였지만 몸과 맘도 함께 병들었음을 느껴서다.

한의원에 출근하면 기운이 가라앉아 틈틈이 누워 안정을 취해야 하고,

한 환자와 10분 이상 대화하기가 힘든 필자의 몸과 마음은 현재 비정상이다.

이는 과로해서 그런 게 결코 아니다.

한의사로서 축적한 부(富)가 필자의 명운(命運)을 흔들어서다.

한의사가 부자 소리를 들으려면 명운부터 강해야 한다.

명운은 단순히 사주 상의 재복(財福)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 바,

돈에 실린 환자의 업장을 이겨낼 정도로 운이 튼튼해야 된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환자의 업장이 바로 독이 되어 한의사를 위협하는 까닭에

재물을 축적하는 데에 장애가 생긴다.

그러한 장애는 질병과 사고로 나타나는데

필자가 간접적으로 아는 한의사 중에 질병, 사고로 급사한 사람이 10명이 넘음은

이와 같은 인과 법칙(因果 法則), 명운 강약(命運 强弱)의 증거다.

고질병이 생겼거나 사고로 운신이 어렵거나 집안에 변고가 난 한의사는

벌어들인 재산을 자신의 명운이 감당치 못해서임을 알아야 한다.

치유되지 못한 환자의 돈이 자신의 업장으로 작용했음을 깨달아야 한다.

명운 약한 한의사가 인과의 위기를 극복하면서 계속 진료에 임하려면

다음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된다.

환자로부터 받은 업장을 줄이거나 자신의 명운을 강화시키는 것.

환자의 업장을 줄이는 법은 치유된 환자의 돈만 받음이 가장 확실하나

이는 사실상 불가능하기에 재산의 사회 환원이 현실적이다.

의료인이 환자로부터 모은 재산은 반드시 사회로 되돌려져야하니

의료인의 재산은 결코 상속되어선 안 된다.

장사꾼이나 사업가와 달리 의료인의 재산 상속을 필자가 반대하는 것은

진료해서 번 돈은 물건 팔고, 사업해서 번 돈과 엄연히 달라서다.

의료인 자신이 모은 환자들의 업장을 어찌 귀한 자식에게 물려주려 하는가.

강한 명운을 소유하여 부를 축적한 한의사일지라도

자식의 명운이 약할 경우 상속으로 인해 오히려 자식을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

이에 필자는 필자 자신을 은행이라 여긴다.

환자들의 돈을 사회 환원 전에 보관해 두는 은행 말이다.

손영기 은행에 쌓인 재산들은 언젠가 사회로 돌려질 터인데

이는 필자 자신의 업장 소멸뿐만 아니라 자식의 복을 위해서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사회에 환원할 돈이 아쉬운 사람은 자신의 명운을 강화시켜 보자.

타고난 명운을 바꾸는 것이 아주 힘들긴 해도 불가능하지만은 않으니

종교의 힘을 얻는 것이 그 방법이다.

철저한 신앙을 통해 수신(修身)하면 명운이 강화되는 바,

종교를 가진 의료인이 많음은 명운 강화의 필요성을 본능적으로 느껴서다.

재산기부도 아쉽고, 신앙생활도 어렵다면 남는 방법은 하나.

강한 명운으로 만들어줄 배우자를 만나는 것이다.

부모나 자식이 자신의 명운을 강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지만

함께 해로할 배우자의 명운 영향이 더 크다.

그래서 궁합이 중요하다.

궁합이 나쁘면 본래 강한 명운도 배우자가 깎을 수 있고,

궁합이 좋으면 약한 명운을 배우자가 북돋을 수 있어서다.

그러나 궁합 맞는 배우자를 인위적으로 만나기란 쉽지 않은 까닭에

재산기부와 신앙생활이 이보다 더 쉽겠다.

재산기부... 신앙생활... 궁합맞추기...

이를 통해 환자의 업장을 줄이고, 자신의 명운을 강화시켜도

한의사로서 필자에게 남는 의문이 있다.

환자의 고통을 대신 짊어질 자격이 필자에게 있는가 말이다.

그 대답을 환자분들에게 구할 수밖에 없는 자신이 부끄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