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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1-08-03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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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일원화 논쟁의 관점찾기 - (4) 문제 풀이의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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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일원화 논쟁의 관점찾기 - (4) 문제 풀이의 핵심!
- 최종덕 교수님 (상지대,자연철학)
(4) 문제풀이의 핵심
그래서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 해결을 위하여 논쟁이 의도하는 본질로 들어갈 필요가 있다. 앞서 말했듯이 과학주의의 보편성과 동양의학의 고유성이 서로 상충되고 있는 점에서 일원화의 논쟁이 시작되었음을 인식해야 한다.
양방 쪽 주장을 다시 추려보면 결국 다음과 같다.
한방의학의 진단과 처방에서 그 재현성이 결여됐다는 것과 객관화된 자료의 부족으로 의료의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다. 그것을 한마디로 해서 과학성의 결여라고 보는 것이다. 더 쉽게는 한의학이 비과학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무엇이 과학적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하며 그에 대한 답이 내려질 수 있다면 일원화의 과정과 절차 그리고 그 논거를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과학적이라는 수식어는 현대에 들어와 가장 설득력 있는 상징어로 자리잡았음을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일상언어 행위 가운데 \'과학적\'이라는 단어의 발설과 함께 우리는 객관성, 분석성, 엄정성, 재현성, 합리성, 논증성, 예측가능성 등을 포섭하는 언어상징 행위를 은연중에 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과학적\'이라는 말은 \'비과학적\'이라는 말보다 좋은 것이고 설득력이 강하며, 미래에 대한 확실성을 더 보장하는 것으로 사용된다. 따라서 비과학적인 것은 과학적인 것으로 환원되어야 한다는 것이 현대 과학사회의 새로운 신념으로 굳게 자리잡게 되었다.
자연과학 탐구행위에서 비과학적 탐구방식은 일선 과학행위에서는 물론이거니와 그 명제 안에서 스스로 모순적이다. 자연과학 탐구에서 비과학적 탐구란 당연히 모순일 뿐 아니라 실질적인 연구결과조차도 산출할 수 없다.
그러나 과학 탐구행위가 아닌 일상의 행위 속에서 비과학적 행위는 얼마든지 일어나고 있다. 삶 혹은 생명의 문제가 그렇다. 예술가의 그림이나 시와 같은 창작행위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런 유형뿐만이 아니라 과학적이 되어야 할 많은 사회적 행위에서 비과학적이거나 비합리적 사례들을 우리는 너무 자주 보고 있다. 문제는 일상적 행위의 구체적 삶에서조차 \'과학적\'이라는 수식어가 갖는 위력이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하는 현대판 과학주의 신화가 불시착되고 있다는 점이다.
\"참 과학적인 예술이야\", 혹은 \"그들의 사랑은 정말 과학적인데\" 라는 발설행위는 언어외형에서부터 과학적이라는 수식어가 잘못 쓰여졌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합리적 혹은 과학적이라는 수식어가 위장되어 분명 잘못 쓰여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과학적이라는 권위 때문에 통용되는 것이 너무 많다. 이와 같은 경우를 두고 하버마스의 비판철학에서는 \"도구화된 합리성\"이라고 하였다. 복잡한 철학 이야기를 굳이 하지 않더라도 주변의 일상성 속에서 과학이란 잣대로 모든 것을 재단해버리는 경우를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그래서 과학에 대한 반성적 이해가 따라야 한다. 일상성 안에서 우리가 말하는 과학은 보통 자연과학적 방법론을 두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서구과학의 역사 속에서 과학주의란 아리스토텔레스의 분류법에서부터 차이와 동일을 구분하는 연역논법과 콩트의 실증주의나 20세기 초 경험적 검증주의 그리고 플라톤의 추상적 실체론 및 데모클리토스에서 뉴턴에 이르는 원자론 등을 함의한다. 이러한 과학주의는 실제로 근대 과학혁명과 산업혁명의 근간이며 오늘날 인간 사유의 지평선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양자역학적 사유방식이 새롭게 자리 잡으면서 과학주의가 지니는 객관성과 합리성, 그리고 강한 인과율 등이 심각한 도전을 받게 되었고 지난 고전과학으로 밝힐 수 없고 다른 방식으로 인식가능한 더 많은 세계가 존재함을 알게 되었다. 이미 미시 양자세계나 생물세계에 대한 인식범주가 기존 환원주의나 원자론에서 비환원주의 혹은 연속존재론으로 변해가고 있으며, 이에 따른 과학탐구행위의 많은 부분들이 변하고 있고 또 앞으로 변할 것이다. 그래서 과학주의의 내포적 의미를 과거와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과학적 패러다임 변화의 구체적 환경을 인지하기 위하여 과학주의라는 총칭 대신에 우리는 과학주의의 내용과 개념적 구분을 먼저 해야 한다. 즉 존재론적 과학주의와 방법론적 과학주의의 구분이 논의를 위하여 반드시 필요하다. 존재론적 과학주의는 과학탐구의 대상이 되는 과학적 존재의 양상에 관한 것을 말한다.
그리고 방법론적 과학주의는 과학탐구 행위의 절차와 정당화 논리에 관한 것이다. 쉽게 말해서 기존의 존재론적 과학주의는 서구 전통의 원자론이나 과학적 실체론을 배경으로 하며, 방법론적 과학주의는 환원주의나 연역논법등을 일러 말한다. 그리고 실증주의나 과학적 인과론 등은 존재론적 과학주의와 방법론적 과학주의 사이에 걸쳐 있는 문제이다. 양자역학 이후 과학의 변화를 말할 때 보통 존재론적 과학주의의 변화를 뜻하고 있다. 미시 양자세계나 생물세계에 대한 과학탐구의 방식이 변하고 있다는 뜻은 결국 양자세계의 탐구대상이나 생물세계의 탐구대상의 모습이 전과 다르다는 뜻이다.
즉 고전과학의 탐구대상이었던 것처럼 환경세계와 독립되고 고정불변의 원자적 존재가 아니라, 변화와 과정 속에서 환경세계와 간섭을 일으키는 피드백의 존재로 그 세계의 양상이 전환되었다는 사실이다.
과학적 패러다임의 변화를 인정할 경우, 그리고 존재론적 과학주의의 입장에서 볼 때, 한의학에 대한 비과학성 비판은 그 철학적 타당성을 보장받기 어렵다.
왜냐하면 한의학적 사유의 기초가 되는 존재론은 氣論의 범주에 있으며 그 기의 양상은 고전과학이 말하는 원자론적인 기준에서 본다면 비과학이지만 변화된 현대과학의 존재론에서 본다면 휼륭한 과학탐구의 과학적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방법론적 과학주의의 입장에서 볼 때, 한의학의 진단과 처방은 그 재현성과 객관적 예측가능성의 논리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비과학적 요인을 갖는다. 그래서 한방 의료가 과학적이기 위하여 객관적이고 재현가능한 진단과 처방을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부과되어야 한다는 것이 바로 양방 의료계의 입장이다.
그러나 문제는 방법론적 과학주의는 반드시 존재론적 과학주의에 의존적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한의학에서 방법론적 과학주의의 결여는 그 존재론적 과학주의가 말하는 한의학적 존재양상의 차이 때문에 오는 필연적 귀결이다. 이런 점 때문에 한의학 일반에 대하여 그 방법론이 결여되어 있으며 주관적 비합리성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러한 비난은 과학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는 현실을 감지하지 못한 채, 동양학 고유의 방법론을 정형화하지 못하고 처방전 돈벌이에만 급급하거나 서구 고전과학의 가위 눌려 수준 낮은 과학실험을 통하여 스스로 과학적 탐구행위를 하고 있다는 자기위안적이고 홍보성 학문에 빠져 있는 한방 의료계 일반에게 우선 책임이 있다.
그러나 그 고유의 방법론 자체가 한의학에는 있을 수 없다는 일방향적인 양방 의료계의 오만 역시 만만치 않은 문제이다.
예를 들어 황제내경의 방법론적 정신은 다음과 같다.
(1)철저한 인과율
(2)주술이나 귀신을 인정하지 않는 합리주의
(3)자연의 운행질서가 내재한다는 자연법칙주의
(4)물질적 경험주의
(5)물질과 정신 혹은 신체와 자연을 하나의 연속적인 관계로 보는 자연주의이다.
이 안에는 (3)과 (5) 같은 한의학의 존재론적 과학주의의 기반이 함의되어 있으며 (1)과 (2) 같은 방법론적 과학주의의 기반이 마련되어 있다.
문제는 고전 동양의학에서 보듯 훌륭한 존재론인 동양 본체론을 한의학이 갖고 있으면서도 그에 상응하는 현대화된 방법론을 재구성하지 못했다는 점이 한방 의료계의 중대한 과실이며 책임이다.
따라서 한방 의료계는 환자를 치료한다는 의술 정신에 충실해야 할 일이지만 더불어 한의학 고유의 철학적인 의학사상의 기반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현대를 선점하는 과학의 노도와 신화 속에서 한의학의 자기상실감이 극대화 될 것이 분명하다. 양방 의료계의 일원화 주장에 대하여 한방 의료계의 수세적인 주장 중의 하나인 동양의학의 고유성 확보라는 말은 그대로 말뿐으로 들린다. 실제로 동양의학에 함의된 동양사상의 합리적 수용에 대한 고민을 얼마나 하는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는 양한방 어느 한 쪽의 문제가 아니라 서양과학의 변화인식과 동양사상의 합리적 수용에 대한 양쪽의 아집과 편견일 수 있다. 양방 쪽의 핵심인 과학주의 보편성이라는 주장은 존재론적 과학주의와 방법론적 과학주의의 구분이 결여되었고, 과학의 진정한 변화를 수용하지 않은 고전과학의 패러다임 안에서 하는 주장이라는 오해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리고 한방 쪽의 동양의학의 고유성 존속이라는 주장은 한방의료 제도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실험실의 유사 경험과학적 방법론을 추종하는 모습이나 동양학에 대한 실질적인 학문연구가 미약한 현실에서 그 설득력이 있을 수 없다. 한방 쪽의 동양의학의 고유성이라는 주장이 양방 쪽의 과학 패러다임을 따라가기 급급한 나머지 패배의식이 강한 반작용으로서 나타난 것이라면 한방은 하루 빨리 양방에 귀속되는 것이 낳다. 동양의 고유성을 말하면서 그 고유성이 보편성으로 발전하지 못할 때, 고유성은 작은 한 지역의 국소적인 국수주의가 된다.
다시 말해서 의료 일원화 논쟁은 위의 양쪽의 핵심 주장인 과학주의의 보편성과 동양의학의 고유성의 내용과 기준에 대한 명확한 전제가 따라야 올바른 논쟁이 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논쟁의 상충 명제들은 알맹이 없는 겉보기 명제가 될 것이다. 겉보기 명제를 주장으로 하는 논쟁은 결국 양쪽의 권익싸움으로 비춰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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