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잘 알고 지내는 한의사와 대화를 하게 되었다.

마침 같이 모여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일부 한의원에서 판매하고 있는 "태아의 성별을 남성으로 바꿔주는 치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였다.

모여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뭐 그런게 있냐" 혹은 "그냥 날로 돈을 버니까 부럽네"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였다.

그런데 그 한의사는 "그것은 동의보감(정확한 텍스트의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음)에 등재되어 있는 처방"이라고 하며, 정확히 말하자면 "여성인 태아를 남성으로 전환시키는 처방"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내가 "태야의 성별이 정해지는 것은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시점, 즉 수정의 순간인데, 그 처방이라는 것이 혹시 남녀가 섹스를 하기 이전에 투여되어야 효과를 보는 것이 아닌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난자의 성염색체는 X뿐이고, 정자의 성염색체는 X 또는 Y이므로, 남성의 태아가 만들어지려면, 즉 성염색체가 XY가 되려먼, Y 염색체를 지닌 정자가 난자와 수정해야 된다.

따라서, 실제로 남성인 태아만 수태되도록 유도하는 처방이라면 남녀가 섹스를 하기 전에 남성 또는 여성에게 투여하여, X 염색체를 지닌 정자를 선택적으로 차단 또는 비활성화 시킴으로써 Y 염색체를 지닌 정자의 비율을 상대적으로 높여, 수정 시에 남성이 수태될 확률을 높이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 나의 추측이었다.

그런데 이 한의사의 대답은 "여자가 수태를 한 것이 확인된 후, 즉 임신 중에 그 처방을 복용함으로써 여성을 남성으로 전환시킨다"였다.
순간 화기애애하던 대화의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아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나요"라는 질문에 대한 교육, 즉 정자와 난자의 수정이라는 이론(이 한의사 앞에서는 차마 이것을 상식이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을 국민학교때부터 들어왔기에 문화적 충격이 만만치 않았다.

같이 대화하던 사람들과 그 한의사 사이에 여러 질문과 대답이 오갔다.

"태아의 성별이 수정의 순간에 결정되며, 그 이후로 바뀌지 않는 것이 아니냐??
답: "한의학에서는 태아의 성별이 결정되는 원리를 그렇게 보지 않는다."

"그럼 태아의 성별이란 것이 언제 결정되는 것이냐? 아들이든 딸이든 기형이든 뭐든 출산 전에는 결정은 될 것 아니냐?"
답: "수태 후 일정 시간이 경과된 후에 결정된다."

"그럼 여성을 남성으로 전환하는 처방말고 남성을 여성으로 전환하는 처방은 있느냐?"
답: "없다."

"하지만 성별이 난자와 정자가 수정하는 순간에 결정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냐?"
답: "한의학에선 그렇게 보지 않으며 개념이 다르다."

"하지만 대체 그 처방의 근거가 무엇이냐?"
답: "동의보감(정확하게 기억하는지 잘 모르겠음)에 기술되어 있는 엄연한 사실이다."

"동의보감에 있다고 다 사실이냐? 과연 그 처방을 적용한 사례와 그에 따른 결과를 제시한 보고서가 있느냐? 단순한 고전의 기술 이외에 실제 임상에 적용한 자료가 결여된 것을, 고전에의 등재를 과연 근거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냐? 이것은 그런 처방을 구입하는 사람들에게 비얌심적인 행위아니냐?"
답: (여기서 역정을 냈음)"아니 그럼 동정녀가 회임해서 아들을 낳는 것도 믿는데 뭘 그래?!"

(그래도 설마...하면서 다시 물어봄)"동의보감인지 어디에 그렇게 기술되어 있다는 것은 당신 말을 들어서 알겠는데, 그래도 당신은 대학교육 받고 알 것 다 아는 사람 아니냐? 신학교 졸업했다고 성서를 문자 그대로 믿는 것 아니듯이, 당신이 배운 논리의 체계가 그렇다고 치고, 그래도 당신은 태아의 성별이 수정의 순간에 정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느냐?"
답: "반드시 그렇다고 볼 수 없다. 확실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 그런 우리의 상식이 뒤집힐 수도 있다."


대화가 이쯤까지 진행되니 더이상 대화가 진행이 되질 않았다.

우선 그 한의사가 질문에 대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으며, 그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그 누구도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없는 명제이기 때문이다.

수학을 제외한 모든 자연과학(의학도 예외가 아님)은 귀납적 추론의 체계, 즉 다수의 구체적 경험으로부터 추상적 원리를 추출하는 방법론 위에 세워져 있다.

그런 귀납적 체계에 대하여 "지금까지의 현상만으로 볼때 현재 우리의 지식이 맞지만, 실제로는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다"라는 쐐기를 박다니!!!

하지만 나는 그 한의사의 믿음(차마 논리라고는 부르지 못하겠다)이 합당하지 않다고 본다.

첫째, 처방이 등재되어 있을뿐 실제로 적용된 임상 데이터가 없다.

몇 명의 산모에게 처방을 하여, 실제로 몇명이 아들을 낳았으며 몇명이 딸을 낳았는지에 대한 실제 데이터가 없다.

몇 명에게 처방을 하여 그 중에서 어떤 부작용이 어떤 빈도로 발생했는지에 대한 자료가 없다.

그 처방을 투여하기 전에 현대의학의 도입 이전에 과연 어떻게 태아가 여성이지를 알아냈는지에 대한 방법론에 대한 규정이 없다.

둘째, 만일 그러한 처방이 실제로 효과가 있다면 현행법 위반이다.

논란의 여지가 충분히 있으며 점차 사문화되어가는 법조항이긴 하지만, 의사가 임산부에게 초음파 검사를 통하여 태아의 성별을 감별해 주면 현행법 위반이다.

게다가 태아의 성감별에 그치치 않고 선택적으로 여성인 태아를 낙태시킨다면 중징계에 의사면허 취소의 위험도 있다.

그런데 태아의 성별을 전환한다는 처방을 판매하는 것이 과연 윤리적일까?

셋째, 자기 자신이 확신하지 못하는 것을 자신보다 취약한 사람에게 금전적 이익을 취하고 판매하는 것은 비윤리적이다.

한의사, 의사를 막론하고 하다 못해 대부분의 대학졸업자는 자신의 전공분야에 있어서는 비전공자에 대하여 우월적 위치를 지닌다.

그런 이유로 돌팔이 의사가 많은 추종자를 거느릴 수 있고 자동차 수리공이 순진한 사람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것이다

환자는 돌팔이 의사가 하는 말도, 그가 "의사"라는 소정의 최소 자격을 갖추었기 때문에 신뢰하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우리가 대화했던 한의사는 스스로도 여아를 남아로 전환하는 처방에 대해 믿음이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논리적으로 반박을 해야지, 왜 "목사들도 결국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하지 않느냐"라는 식으로 나오는가?

누구나 잘못된 생각을 가질 수 있으며, 그 자체는 잘못이 아니다.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서, 그 잘못된 생각으로 인하여 타인에게 신체적, 정신적, 금전적으로 위해를 가할 수 있으나, 그것이 의도적이지 않았을때는 반드시 비윤리적이라고 보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믿음이 깊은 목사와 신도가 안수기도를 하다가 환자를 구타해서 죽인 경우에, 비록 현행법 위반이긴 하지만, 그들의 의도는 순수했을 수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스스로가 자신의 논리가 거짓임을 인지하거나 혹은 100% 확신하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타인으로 하여금 그것을 믿게하고 그를 통하여 금전적 이익을 취하는 것은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도 태아의 성별이 정자와 난자가 수정되는 순간에 결정된다고 "믿는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거의 모든 "사실"들이 엄격이 따져볼때 단지 "믿음"이 아닌가?
자연과학이란 귀납적 추론에 의해서 쌓아올려진 믿음의 체계이지 않은가?

내 부모가 실제로 나의 생물학적 부모임을 내가 비록 유전학적으로 검증해보지는 않았지만, 그냥 믿지 않는가?

하지만 앞으로 누군가 태아의 성결정에 대한 새로운 이론을 제시하고 그것을 객관적이고 재현가능한 방법론으로 증명한다면, 주저하지 않고 내 믿음을 바꾸겠다.
그러나 우리가 대화했던 한의사는 그런 마음의 자세가 없는 것 같았다.

내가 그에게 실망한 것은 그가 "여성의 태아를 남성의 태아로 전환할 수 있는 처방이 있다"라고 주장했기 때문이 아니다.

날 무척 실망시키고 낙담케 한 것은 그가 자신의 주장의 근거로서 "동의보감(정확한 텍스트의 제목은 기억나지 않음)에 그런 처방이 등재되어 있다"라고 한 점이다.

동의보감은 저작자와 저작연대가 명확한 고전 텍스트이다.

따라서 판본에 따른 소소한 차이 외에는 바뀌지 않는다.

신판 또는 개정판이 나오지 않는단 말이다.

따라서 그의 믿음은 바뀔 수가 없는 것이다.

마치 성서의 텍스트가 수천년간 불변인 듯이.

그 한의사는 과학적 방법론과 문헌분석을 혼동하고 있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