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1에 대한 답변
황제내경을 황제가 안 지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잘 알고 계신 편이군요. 황제내경이 확립된 시기는 전한시대입니다. 그리고 후한시대에 지금의 소문의 형태가 갖춰지게 되고, 송나라 때 고려로부터 영추를 수입해 와서 소문과 영추라는 지금의 황제내경 체제가 그 때에서야 완전히 고정된 것입니다.
하지만 황제내경은 역사적으로 볼 때 굉장히 복잡한 수순을 거쳤습니다. 한서 예문지에 따르면 춘추시대에 황제내경이 만들어졌으나, 지금과 전혀 다른 것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황제내경 이전에 의경이란 책이 황제내경에 인용된 흔적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소실과 복원의 과정을 통해 한나라 때 이르러서 황제내경이 정리되었습니다. 그 부분에서는 이런 내용을 상세히 구분하지 않은 제 문제가 있었군요.
지금 도교를 노자 이전의 도교를 주장하신다면 원시도교를 말하는 것이 되는 것인데, 이 경우의 원시도교란 지금의 도교와 전혀 다릅니다. 이 당시에는 외단, 내단, 존사 등의 개념도 없고, 자연의 원리나 천도에 대한 관점을 떠나 잡다한 것으로 주술을 거는 수준인 방술사의 위치에 있었습니다. 진시황에게 불로장생의 바람을 집어 넣어서 분서갱유의 원인이 되기도 했던 그 방술사 말입니다.
물론 이런 원시도교에서도 질병 치료를 위한 주술은 존재했지만 그것은 단지 주술일 뿐이며 의학과는 구분이 됩니다. 질병과 환자를 고치는 데 있어서 의학에 의지해야지 귀신에게 의뢰할 바가 아니라는 주장은 한의학의 오랜 기간 동안 계속해서 나오던 말입니다. 원시도교까지 도교의 영역으로 인정하면서 도교와 관계성을 논의하신다는 것은 오히려 후대에 인체관이 발전한 도교 보다도 더 무의미한 영향을 준 것을 끌어들인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생각을 해보신다고 해도 도교가 한의학에 영향을 준 것 보다, 한의학이 도교의 방술에 영향을 준 것이 더 크지 않겠습니까? 몸에 대한 전문가는 의사였지 도사가 아니었잖습니까.
의문 2에 대한 답변
송나라 때, 도교가 융성한 것은 사실입니다. 이 당시에 장자가 송 현종으로 부터 남화진인이란 호를 받기도 했고, 노장사상이 대폭 확대된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송나라가 도교 이념의 국가였던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유교 이념의 국가였단 것을 생각하셔야 합니다.
우리는 송나라하면 먼저 떠올리는 것이 문치주의라는 말입니다. 이 문치주의를 한 이념이 바로 성리학 아닙니까? 송나라 때 도교가 융성하신 것을 알고 계시면서 어떻게 송나라때 주희, 정이, 왕수인 등의 유교계의 거두들이 모두 이 때 나타났다는 것과 당송팔대가들의 활동시기가 이 시기란 점 등에서 도무지 앞 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해 보셔야 할 문제가 아닐까요?
음양오행 등의 사상을 가지고 의학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더 말이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자학에는 태극도가 있고, 조선시대 이황 역시 태극도설을 지어 성학십도 중의 하나로 두었는데 여기에 음양 오행 태극 무극 등의 개념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그런 사상은 도교만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동아시아 전체가 공유하던 기본개념에 해당된다고 보셔야 합니다.
비소, 수은 등은 한약재이며, 도가의 외단이 유행하던 초기 도교에서 많이 사용되던 금단의 재료였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도가의 일방적 영향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환약 중에 丹이라는 이름이 붙은 환약을 만든 사람이 도교 사상에 근본해서 그런 이름을 만든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해서 비소, 수은을 쓴 것이 도교의 영향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도교 계열의 영향력이란 점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어떤 사상이 의학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 지에 대한 비교가 필요한 법인데, 그런 것도 없이 일방적으로 생각만으로 말씀하시는 것은 도무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천금방을 저술한 손사막이나, 주후비급방을 저술한 갈홍 등이 도교 계열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이 쓴 의서의 의학사상은 도교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오히려 조선의 선도에 영향을 받은 동의보감이 중국의 도사들이 쓴 의서보다 훨씬 더 도교에 가까운 색채를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도교의 영향을 받아서 방술 수준으로 떨어진 부분이나, 도교의 왜곡된 관점은 모두 현재 한의학에서 인용도 되지 않습니다. 의학이라고 하는 것은 도교와 달리 관념 이상으로 환자와 질병이라는 객관적 사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그런 특징으로 인해 해서 안 되면 버려지는 방법을 통해 상당한 시간 동안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현재의 한의학이 도교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고, 언급하신 서적의 경우를 살펴 보겠습니다.
마왕퇴의서... 얼마나 보셨는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본 음양십일맥구경과 족비십일맥구경에서는 그 어떤 도가적인 요소도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제가 공부가 부족해서 마왕퇴 의서를 모두 읽어 보지 않았으므로 어떤 의서가 도교적인 색채를 띠고 있는 지 먼저 말씀해 보시길 바랍니다.
천금방과 황제내경이 양생을 중시하긴 했지만, 그것이 곧 도교 사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억지나 다름 없다는 것은 잘 알고 계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화제국방은 직접 안 봐서 모르겠습니다만 처방집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처방집에 어떤 도교 사상이 개입되고 있는 지 더욱 의문이군요. 화제국방을 원전으로 현대까지 사용되고 있는 처방들을 살펴 보면 더더욱 도교와의 연결성은 찾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초기 한의서 중에 현재는 쓰이지도 않는 부분을 언급해서 한의학이 영향을 받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모르겠지만 지금의 한의학에 도교사상이 영향을 받고 있다는 주장을 하신다면 정말 비논리적인 주장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의학과 도교, 도가 등이 관련이 있다는 말에 도덕경과 장자, 상청황정내경경까지 보았습니다만 전혀 무관한 관계였습니다. 제가 게으르고 방대한 내용을 분석할 능력이 되지는 못 해서 정통도장을 보지는 않았지만, 도교의 인체관과 한의학의 인체관은 기본적인 패러다임에 있어서 차이가 있습니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그런 이유나 또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 지에서 차이를 보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제발 주장을 하시려거든, 근거를 대십시오. 그것이 마땅한 차례고 원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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