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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4-03-02 01:20
★☆ 나의 수능 이야기 - (6) - [수능날 & Epilogue] ★☆
 글쓴이 : lyle (220.♡.139.62)
조회 : 10,431   추천 : 10   비추천 : 0  
11월 5일 아침이 밝았다. 적어도 아침 날씨는 흐리고 습했다. 마을 버스를 타고 내가 배정받은 관악고등학교로 향했다. 한 손엔 보온밥통, 다른 한 손엔 녹차를 넣은 보온 물통을 들고 교실로 들어갔다. 전날 교실과 책상까지 확인해뒀었는데 그때 책상위에 덕지덕지 붙어있던 몇십여 장(-_-)의 여자연예인 스티커는 말씀하게 청소된 채였다. 얼마나 고맙던지. 맨 뒷자리라서 듣기방송이 옆 벽을 타고 심하게 울렸다. 젠장, 할 수 없지.
 조용하고 엄숙한 시험장 분위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이과생이라도 제 2외국어를 응시한다고 하는데, 난 그런 정보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내가 응시한 수험장에는 고등학교 재학생이 대부분이었고 그만큼 분위기가 안좋았다. 내 앞자리에 앉은 친구는 모든 시험을 5분 내에 끝내고 잠을 자더라.
 나는 중요한 시험이 있는 날 아침엔 심하게 설사를 하는 버릇이 있다. 97년 11월에 응시했던 수능 때도 그랬고, 9월 3일 교육청 모의고사 때도 그랬다. 이 날도 어김없이 배가 아파 끙끙대며 식은 땀을 흘리다 화장실에 가서 반 탈진상태로 나왔다. 사실 많이 겪어본 일이라 특별히 당황하진 않았다. 오히려 이 \'반 탈진상태\'에서 시험을 보는 것에 더 익숙하다. 특이한 징크스를 가지고 있다거나 건강상의 약간의 문제가 있는 사람도 그 상황을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익숙해지는 훈련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난 심지어 수능 당일날 앞 사람이 다리를 덜덜 떨어대는 것에 대비하는 훈련도 해본적이 있다. (-_-대성학원 옆자리에 앉은 친구가 다리를 너무 심하게 떨어서 자습때 집중이 상당히 안되었는데 그냥 훈련이라고 생각하고 무덤덤하려 노력했던 기억...ㅎㅎ) 그리고 수능 당일에 감기가 걸릴 것을 대비하여 감기가 걸려 정신이 어벙벙하고 두통이 엄습하고 졸음이 쏟아지는 채로 모의고사를 응시한 경험이 있다. 10월 종로 모의고사가 바로 그것인데, 총점 375점 정도였지만 상당히 어려웠던 시험이라 나름대로 만족하고, 더 이상 감기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언어영역 듣기평가 때 너무 집중한 나머지 빈혈증세를 보였다. 모의고사를 치를 때보다 2퍼센트만 더 집중하고 2퍼센트만 더 꼼꼼하게 풀어보자는 생각으로 임했다. 시간안배를 적절히 해서 시간이 부족하진 않았지만, 문제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박학천 모의고사처럼 특이한 언어영역 모의고사를 풀고 난 느낌이랄까. 느낌이 맞아떨어졌는지, 현대시지문의 5문제 중에서 4문제를 틀렸다. (15, 16, 17, 18번을 연속으로) 그리고 나머지 지문에서 3개를 틀려서 105점. 이 점수는 나중에 17번 파동으로 2점이 오른 107점이 되어 나의 언어능력을 최종적으로 대변하게 된다.
 수학시험은 그냥 무난하게 응시, 언제나처럼 30도 각도를 그려놓고 나중에 60도로 읽어서 -3...... 77점. 시험감독관이 내 옆에 서 있었다. 마치 내가 문제푸는 것을 유심히 쳐다보는 듯 느껴져서 영 찜찜했다. 실은 내가 제일 뒷자리라서 사물함에 기대어 있으려 내 옆에 있었던 것인데 난 괜히 산만해져서리...ㅎㅎ
 그날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3교시였는데, 운이 좀 따랐다. 사탐과목들을 좋아하는지라 항상 사탐을 먼저 풀고 과탐문제를 접했는데, 처음 시험지를 받고 한번 넘겨보다 과탐의 첫문제인 33번 문제를 얼핏 보게 되었다. 뭔가 심상치않다는 기운을 느낀 것이 그날 최대의 행운이었다. 평소완 달리 과탐문제부터 심혈을 기울여 풀었고, 사탐은 2문제를 틀렸다. 최종점수 과탐 -2, 사탐 -4. 신사고 대박 프로젝트 과탐시리즈를 풀면서 워낙 꼬아놓은 문제가 많아 딱 한번씩만 더 고민해보는 습관을 들였는데 마침 과탐문제가 그런식으로 얍삽하게 나와서 상대적으로 볼 때 전략이 주효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푸는 와중에도 \'이야...이 문제는 요런식으로 꼬아놔서 당하는 애들 많겠는걸\' 하는 느낌이 상당히 자주 들어서 나중에는 무섭기까지 했다.
 4교시까지 시험을 무사히 치르고,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왔다. 뉴스엔 쉬워졌다는 얘기뿐이었다. 영덕씨가 나와서 마치 4과목을 죄다 연구분석해 본 듯한 표정으로 떠든다. 수학 한 문제를 틀렸다는 좌절이 있고나서, 총점이 376이라는 것을 알았다.(나중에 378) 작년보다 쉬워졌다니 -5점 정도 해서 작년 컷이랑 비교해보았다. 인서울은 힘들 듯 했다. 나중에 오르비 자체 집계를 통해 첫날의 뉴스보도는 완전히 빗나간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오히려 내 점수는 적당히 골고루 잘 받은 점수라 특별히 지원이 힘든 학교가 별로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과목 : 원점수 / 변표 / 백분위

언어 : 107 / 114 / 98%
수리 : 77 / 75 / 94%
사탐 : 44 / 48 / 98%
과탐 : 70 / 72 / 100%
외국어 : 80 / 72 / 99%

총점 : 378 (0.1~0.15%) / 381 (0.15~0.2% 백분위는 오르비에서)
수과외 : 227 / 219

 한의대로 마음을 완전히 굳히고 오르비를 통해서 수험생들의 분위기를 살폈다. 나도 수험생 가운데 한명의 입장으로, 이 점수로 여기여기가 합격 가능하냐고 애원섞인 질문도 해보고 이 사람 저 사람 질문에 답글도 달아주고 하며 시간을 보냈다. 혼자 생각해봐도 충분히 나오는 답일텐데....역시나 사람은 항상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동물인 듯 하다.

 허무하게 몇 달을 보냈다. 지금와서 가장 후회가 남는 건, 수능 후의 몇 달이다. 이미 나의 손을 떠난 점수, 이미 나의 손을 떠난 원서. 이 모든 것을 알면서도 컴퓨터 앞에 앉아 위로글과 격려글을 애원할 수 밖에 없는 나약함이 좀 아쉬웠다. 12월 30일 경희대 발표 후, 예비 3번이라는 번호를 받고 한편으로 기뻤으나, 한달이 넘는 시간을 다시 어이없이 보내야한다는 건 좀 견디기 힘들었다. 경희대에서 빠져나간다는 글이나 소문 등을 접할 때는 정말 기분이 좋았지만 다른 이들의 선택에 따라 내 갈 곳이 정해진다는 사실은 그리 유쾌하진 않았다.

가군 : 경희대 한의예과 / 예비3번(1차추가합격)
나군 : 대전대 한의예과 / 최초합격
다군 : 동국대 한의예과 / 최초합격

 수능 후 하니대닷컴을 알고 오늘까지 준\'죽돌이\'로서 많은 정보를 가져가고, 또 가져오려 애썼다. 여러글을 통해 대의나 큰 비전을 세우지 않고 막연히 한의대로 발걸음을 옮긴 것을 반성한 적도 있고, 생각 이상으로 심오하고 멋진 학문을 접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뿌듯하기도 했다. 적당한 시기에 적절한 충고와 질책을 전해준 \'하니대닷컴\'에 진심어린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12시가 지나고 이제 3월 2일이 되었다. 개강이다. 그동안의 많은 추억들은 이제 가슴한켠에 모아두고, 새로운 한의학도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6년전 서울대 합격소식을 들었던 그날의 감동이, 이제와 나에게는 큰 의미를 지니지 않듯이, 오늘의 이 가슴벅찬 설레임역시 종국에는 별일이 아닐 수도 있으리라.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그 끝이 창대하리라는 말씀과 같이 나는 오히려 미약한 시작을 꿈꾼다. 겸손하게 하루하루를 살고, 한발짝한발짝 인리에 다가가는 희열을 맛보며, 다른 이와 세상을 걱정하고 고민하는 삶이 그저 바람에 그치고 마는 말장난은 아닐 것임을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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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을 좀 더 열심히 더듬어서 공부하시는 분들께 도움이 되는 이야기들을 잘~ 정리해보고 싶었는데, 막판으로 갈수록 글이 무성의해지는 것 같아 아쉽네요. 좀 더 시간을 끌면 더 무성의해질까봐, \'제가 가게 될 학교가 정해질 때쯤 에필로그를 쓰겠다.\'라는 약속을 지키기로 했습니다.

 Me Doogi님께선 남의 수기가 자신의 공부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더라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저도 충분히 동감하는 바이구요, 자신의 수험생활은 자신이 개척하고 꾸려가야 한다는 얘기도 맞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에 따라 기본적으로 가진 지식수준이 다르고, 사물을 인식하는 관점이 다르며, 그로 인해 공부방법역시 사람마다 다를 수 밖에 없으니까요. 수험생활을 나름대로 성공한 사람들도 결과를 부각시킨 이야기를 전해줄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다만, 공부를 어느 정도나 해야할까, 나의 환경은 어느 정도나 열악한가, 내 수준은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일까를 판단하지 못해 생기는 혼란은 다른 이들의 수험수기를 통해 해결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바닥에서 성적이 한꺼번의 솟아 올랐다는 얘기는 적어도 \"내 경우도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겠구나\" 정도의 격려를 제공해줄 수가 있겠지요. 전 6월중순경에 공부를 시작하면서, 6월 이후에 공부를 시작했다는 내용의 수기를 찾아헤매었습니다. 위로를 받고 싶었기도 했고, 그 이야기를 기준으로 해서 전체적인 진도전략을 짜야되겠다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용두사미격의 글이 되버렸지만, 한분이라도 성공적인 입시를 치르셨으면 하는 마음에서 글을 썼구요, 아무쪼록 하니대닷컴에 계신 모든 분들과 내년 이맘 때 파란메달을 달고 다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그 험난한 길 위에, 인터넷상으로나마 저도 함께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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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 04-03-02 21:11
 211.♡.166.249  
장문의 수기 올리시느라 수고많으셨습니다.

올리신글 다 잘봤고 제게는 많은 도움이 되는것 같습니다.
학교생활 잘하시고 참된 한의사 되시길 바랍니다.
저도 내년에는 수기를 올릴수있으면 좋겠네요^^
제다이 04-03-02 23:20
 211.♡.111.61  
이야 장문의 수기를 다 올리셨군요^^라일님 수고하셨고요
한의대서도 열공하시길 빌어요 ㅎㅎ
보드 타는 한의사 04-03-04 10:46
 218.♡.103.169  
^^잘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장금이 보다 더 기대하며 읽었던 수기 였습니다.
화타(華陀)이슨 04-03-06 13:02
 163.♡.47.54  
형 수기는 제 수기보다 확실히 탄탄한 맛이 있어요 ^_^

저도 추천한표 ~!
꽃등심먹고싶다 04-03-16 13:08
 211.♡.226.165  
역시 서울대출신은 다르다...
▩만학▩ 04-03-20 20:31
 61.♡.169.238  
오늘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음.
라일님~
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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