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리플을 읽다 보니 제가 너무 까칠하게 군 것 아닌가 싶어서... 일단 고개 숙여 사과를 드리고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우선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이신데 막연하게 자신의 평생 직업을 벌써부터 확정 짓고 싶으신가요? 한의학을 공부해야만 하겠다는 동기가 자신 안에 없다면 혼란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한의대를 들어오면 정말 어처구니 없는 짓을 하더라도 어떻게든 구르다 보면 저절로 한의사가 됩니다. 게다가 어지간히 모범생들이 많다 보니 제 멋대로 논다 싶어도 나름대로 규칙적으로 놀다 보니 유급도 많지 않습니다. 그러니 한의대만 오면 거의 한의사가 됩니다.
고등학생의 가능성은 무한한 진로 선택이 가능하단 점에서 정말로 큰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자기가 한의학 아니면 안 된다는 그런 처절함이 없다면 왠만하면 폭 넓은 생각을 가지고 진로를 고민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언제나 자기 학과에 대해 좋은 말만 늘어 놓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수험생으로서 진로에 대한 혼란이 있을 때 세뇌시키는 것은 별로 좋지 않을 거란 생각에 스스로 진로를 정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한 말인데 조~금 많이 까칠했죠? (흠흠~ 제가 아직 미숙해서 제 심리 상태에 따라 글이 기복이 너무 심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한의학을 하기로 결정한 것은 고등학교 3학년 그것도 여름이 다 되어서 였습니다. 담임선생님은 당연히 황당해했죠. 성적도 안 되는 데 난데없이 진로를 확 바꿔 버렸으니까요.
그 전까지 전 진로를 적어 보라고 했을 때 제약회사 연구원 쪽을 희망하고 있었고, 실제로 제약에 대해서 기대감까지 가지고 있었습니다. 현실은 달랐죠. 한국에서 만든 약은 없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수 만 종류의 약이 쏟아져 나오는 21세기가 되도록 한국에서 개발한 약은 단 하나 뿐입니다.
그 충격은 참으로 컸고, 방황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나름대로 제 목표는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신약을 개발해 페니실린이 영원히 기억되듯 그런 기억에 남을 약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사실을 알고 난 뒤엔 그럼 난 뭐 하지?라는 아주 기본적인 문제에서 턱 하고 막혔습니다. 그 때 어머니 후배이신 한 한의사 선생님께서 매일 침을 돈도 받지 않으시고 놔주셨습니다. 매일 같이 전 한의원을 갔구요.
그 때 전 처음으로 한의학이란 것을 몸으로 느꼈습니다. 물론 한약이나 침 어렸을 때 무진장 경험해 봤지만 침을 맞으면서 기의 흐름이라고 해야 될 지... 뭐라고 해야 될 지 모르겠지만 침을 맞게 되면 생기는 미묘한 변화를 느꼈습니다.
이 때만 해도 한의학에 대한 반 호기심으로 진로를 한의학으로 해보겠다고 했던 거였는데 성적은 수능 1달전까지 전~혀 아니었습니다. 4%대던 성적이 오히려 11%로 주저앉았으니까요.
솔직히 고3때 공부는 안 하고... 한의학 원전 읽었습니다. 솔직히 몸으로 느껴지긴 하지만 왜 그런 지 궁금하지 않을 리가 없잖아요? 그래서 너무 궁금해서 한의학에 관한 책을 기웃거려 봤습니다.
참 무식하면 진짜 용감합니다. 동의수세보원도 읽어 보고, 오행생식원 하는 데서 오행으로 하는 진단법 같은 것도 배우고...(고3 같지 않지요? ㅋㅋ 근데 동의수세보원은 본3이 되서 다시 보니 더더욱 모르겠습니다)
근데 수능 치기 한 달 전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이건 나랑 맞는 학문이고, 나라면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자만스러웠다 싶지만... 수능 한 달 남겨 놓고 내린 그 결정은 저를 책상으로 끌어 당겼습니다. 그렇게 공부를 시작하고, 심지어 옆 반 녀석들까지 "수능이 다가오니 별 이상한 놈도 공부를 하기 시작한다"면서 제가 공부한다고 신기해하면서 구경 오더군요. 웬수녀석들 ㅡㅡ;;
일주일 뒤 모의고사에서 원점수 30점을 올리면서 1%이내의 성적을 끌어냈고, 뭐 대입은 결국 문 닫고 들어가긴 했지만... 한의대 들어와서 잘(?) 다니고 있습니다.
물론 고3때 내가 미쳤지 하는 생각이나, 뭐 나랑 잘 맞을 줄 알았는데... 한의학을 날 버렸다 같은 좌절도 해가면서 나름대로 즐겁게 한의학을 이해해 보려고 발버둥은 치고 있습니다.
한의학.
왜 하고 싶으신가요?
마음이 혼란스러울 땐 가장 근본적인 것부터 차곡차곡 해결해서 풀어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질문하신 분께 가장 기본적인 영역은 바로 한의학을 스스로 하고 싶은 지 그렇지 않은 지 잘 모르는 데서 시작합니다. 동양의 유명한 고전인 '대학'에서는 무엇을 할 지 정해야 마음이 편해지고 자신이 뭘 해야 할 지를 결정할 수 있다고 합니다.
스스로가 한의학에 목 말라 하지 않고선 자기가 왜 하필, 한의학을 해야 할 지 답도 나올 수 없고, 집중도 될 리가 없습니다. 그 혼란은 한의대를 들어온 뒤에라도 계속해서 따라 다니는 존재입니다.
한의학.
함께 하실 건가요?
한의학을 해야만 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정하신다면, 내년엔 한의대생으로서 한의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볼 수 있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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