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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4-01-03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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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수능 이야기 - (1) -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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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lyle (220.♡.136.144)
 조회 : 9,220  추천 : 8  비추천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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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준비를 얼마나 했냐는 질문을 받으면 4개월 정도라고 대답한다. 입버릇이 되어 그렇게 말해왔는데 오늘 다시 정확한 날짜를 계산해보니 5개월에 약간 못 미치는 기간이라는 대답이 정확하다는 걸 알았다. 대성학원 편입을 7월에 했기 때문에 그렇게 이야기해온 것 같다.
6월 초에 퇴사를 하고 몇 일간은 침대에 파묻혀 지냈다. 마지막달 월급도 못 받았다. 노동청에 고발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그저 생각만 하면 화나고 내 자신이 한심해져서 아무 생각 없이 며칠을 살았다.(마지막달 월급 60여만원은 6월 말에 받을 수 있었다. 먼저 퇴사한 병특사원이 노동청에 고발을 했기 때문이라 추측하고 있다. 정신이 좀 들면 7월에 직접 고발하려고 했으나 다행히 귀찮은 짓을 안해도 되게 되었다.)
8월 5일 입대와 카투사 지원을 두고 고민했다. 퇴사한지 3일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때였는데 카투사 지원쪽으로 마음이 기우니 이번에는 붙든 떨어지든 2003년 말까지 할일 없이 놀아야 한다는 고민이 생겼다. 그 때 불현듯 후두부를 강타하는 생각이 수능.
의외로 어머니와 누나는 찬성이었다. 내 대학생활과 현재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아는 가족들이었기에 그랬던 것 같다. 의외의 찬성에 오히려 반발심(이대로는 내가 그렇게도 못미더운가...하는)이 생긴 나는 문제집 한권을 사서 풀어보고, 아니다 싶으면 당장 그만두겠다는 네가지 없는 말을 남겼다.
수능에 관해서는 기억나는 것이 거의 없었다. 졸업한지 5년이 넘었고, 또 내가 5차교육과정의 마지막 세대였기 때문에 과학탐구와 사회탐구에 어떤 과목이 있는지, 선택과목의 개념이 뭔지 이러한 것들을 전혀 몰랐다. 교보문고로 가니 넘기는 모의고사 문제집(혹자들은 \'들추는\' 문제집이라고들 하더라)들이 막 출시된 것 같았다. 그 때가 6월 8~9일경. 언어, 수학, 영어 문제집을 하나씩 샀다. 아무거나 눈에 제일 먼저 띄는 걸로 샀었는데 나중에 보니 수학은 디딤돌이었고 언어와 영어는 \"수능생각\"이라는 희귀한 문제집이었다.(SPS 수능생각은 상당히 보기 힘든 문제집이지만 수리영역 문제집만큼은 최상위권 수험생들에게 꽤 유명하다고 나중에 들었다.)
그 길로 도서관에 가서 각각 1회씩 풀었다. 언어 90점대, 수학 50점대, 영어는 70점대 초반이 나왔다. 98년 이후로 수능이 점점 쉬워졌다는 얘기를 기억해내고는 좀 좌절했다. 이 정도면 총점이 320~340점 정도일텐데 인터넷에 문의해보니 이 점수는 서울에 소재한 공대에 겨우 진학할 수 있는 점수랜다. 당시 오르비에서 수기를 하나 읽었다. 그 친구도(존대를 하지 않는 이유는 그 친구가 내 과후배였기 때문이다.) 6월에 공부를 시작했대서 반가웠는데 처음 본 모의고사 점수가 380정도란다. 반가웠던 마음이 싹 사라졌다.
수능준비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힌 단계도 아니었지만 상당한 무력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의대...한의대...머 이런 단어는 택도 없는 소리로만 들렸다. 암기과목은 그렇다치고, 언어나 영어는 지금부터 공부해봤자 팍팍 오를 것 같지도 않은 느낌인데..수학도 수2부분은 개념자체를 다 잊어버린 것 같았다. 대학교2학년 이후로는 우연찮게도 문과애들에게만 과외수업을 했기 때문에 더욱 그런 듯 했다. 난 내가 기본실력이 있기 때문에(나의 숨겨진 자만심과 자부심이 여기서 드러난다) 준비운동만 좀 하다가 수능을 봐도 웬만한 성적이 나올 것으로 생각했지만 웬걸, 갑자기 수험생들이 대단해보이고, 오기가 생기고, 화가 났다. 그리고 마치 수험생들이 꿈꾸는 로망 내지는 장밋빛 미래가 내 머릿속에 전이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래, 다시 한번 나의 또다른 길을 열어제낄 수 있다면....더 훌륭하고 멋진 삶을 설계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터무니 없는 환상을 가지게 되면서 알게 모르게 수능을 준비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굳혔다.
좀 어이없는 시작이라고 생각하실 줄로 안다. 남들은 몇 년씩 고민하고 갈구하여 결심을 하고, 또 수험생활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한다고 하는데 나의 시작은 너무 시시했다. 8월 입대를 거부할 건수를 찾은 것일까 아니면 아무 생각 없이 수능 장수생 열풍에 동참한 것일까. 사실 좀 더 심각한 진로의 고민은 그 이후에 간간이 할 기회가 있었지만 시작은 누가 봐도 너무나 미천했다. 심적 준비에 있어서는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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